뒤늦은 10년차 게임폐인이 3주택 10상가를 가질 수 있었던 치트키

우리 부모님은 고기 한번 제대로 못먹는 살림살이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기준으로 꽤 큰돈을 들여 차세대 3D 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1을 나에게 사주셨었다. 내가 그것만 가지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을 가겠다는 조건을 걸고 오랜 기간 협상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임과 공부는 양립할 수 없는 것. 게임을 하드하게 하면서도 성적을 최상위권으로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방법을 모색했다. 공부시간 대비 최대한의 성과를 뽑아낼 수 있는 길을 찾기 시작했다. 게임시간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중간고사 기말고사의 결과인 내신은 각 과목 선생님들의 수업만 잘 따라가면 되었기 때문에, 학교에 있는 시간은 절대 졸지 않고 모두 받아적으며 열심히 공부했다. 방과후 집에 가서할 게임을 생각하며 졸음을 이겨내곤 했다. 그렇게 내신을 잘 받을 시스템을 나름대로 구축해 놓고 몇년간 실행했고 결과 또한 좋았다.

 

문제는 수능이었다. 수능에서는 이 방법이 먹히지 않았다. 중2때부터 고2때까지 내신만 방어하며 게임과 함께 허송세월을 보냈더니 수능에선 문제가 크게 생기더라. 고3 첫 모의고사 성적표를 받아보니 이거 참 부모님께 미안할 정도의 성적이 나왔다. 날 믿고 게임기를 사주셨던 건데.. 전교 250명중에 220등인가를 했다. 그날로 스스로 게임기를 팔아버렸다. 환경을 바꾸기 위함이었다. 사실 수능을 무사히 치뤄야 수능 끝나는 시점에 출시될 고성능 최신 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2 구매를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고. 나름 미래의 유희를 즐기기 위한 대비였기도 했다.  

 

그래서 또 전략을 짰다. 이미 뒤쳐진 내가 앞에 220명을 따라잡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무작정 선생님들을 찾아가서 물어봤다. 그리고 PC통신을 통해 검색을 했다(지금 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텍스트 기반의 커뮤니티가 그 당시에도 잘 형성되어 있었다). 그렇게 묻고 다니니 대충 결론이 나더라. EBS 문제집을 사다가 풀라는 것이었다. 엄마에게 5만원을 받아 부천북부역 지하 어딘가의 서점에 가서 영역별로 EBS교재를 샀다. 그리고 한 달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다섯번을 풀었다. 책이 너덜너덜 해졌었다. 그리고 모의고사를 다시 봤는데 전교에서 14등인가를 했다. 14등인지 19등인지는 잘 기억이 안나는데 둘중 하나였다. 어쨌든 한 달만에 200명을 따라잡은 것이었다. 부정행위를 한거 아니냐며 담임께 의심을 받긴 했지만 뭐 아니었으니까.. 내 방법론을 말씀드리고 문제집 상태를 보니 수긍을 하시더라. 

 

과거를 반추해보니 역행자의 저자 자청님 말처럼 인생에는 다 메뉴얼, 치트키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게임과 학업 뿐만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도 항상 그래왔다.

 

그닥 좋은 대학을 나오지도 못했고 영어 한마디 못하는 오리지날 코리안이었지만 나름 치밀한 전략을 짜서 들어간 영어면접에서 가산점을 크게 받아 총 TO가 다섯명이었던 에스오일에 최종합격을 했었고, 삼성의 탑티어 계열사나 현대중공업(그당시 국내가 조선업계 세계 1위였기에 인기가 많았다) 등 대기업에도 모두 합격을 했었다. 내 동기가 될뻔했던 사람들과 실제 동기들을 보면 내가 학력이 제일 구렸다. 내가 그들을 이길 수 있었던 건 딱 하나 디아블로2와 포트리스 랭킹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격증 하나 없는 내가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던 것 또한 어찌보면 매 순간마다 메뉴얼들과 치트키를 찾아 읽고 습득하여 나름대로의 방법론을 만들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 당시에도 취업뽀개기라는 좋은 커뮤니티가 있었고, 학교에는 취창업지원센터라는 좋은 컨설팅 기관이 있었다. 하지만 제대로 활용하는 사람은 나 말고 못봤다. 면접 기회를 얻기 위해 치루는 SSAT 같은 직무적성 능력검사를 잘 보려면 두꺼운 책 하나를 사서 두번정도 풀면 된다는 커뮤니티 누군가의 조언을 읽고 그들을 의심을 하기 보단 지체 없이 바로 실행에 들어갔다. 그러고 나니 모든 대기업의 직무적성능력검사는 하이패스로 통과되더라. 과 동기들은 대부분 면접 기회도 가지지 못하는데 나만 다 최종합격을 해서 회사를 골라 갔다. 면접 역시 치트키를 썼기 때문이었다. 스펙도 개 구린 내가 말이다(토익 735에 자격증은 운전면허 1종 보통이 끝이었음).

 

입사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삼성을 다니는 약 8년의 기간동안 나는 야근을 해본적이 거의 없다. 프로젝트들을 빨리 잘 끝냈기 때문이다. 성과를 내니 눈치볼 일이 없어지더라. 그래서 칼퇴 후 하루 7시간씩 world of warcraft를 5년간 했다(이 기간동안 기숙사에 처박혀 게임만 했더니 목돈을 아주 많이 모을 수 있었고 이게 3주택 10상가의 시드가 됨).

 

당시 삼성에는 식스시그마라는 통계 기반 업무 추진 방법론을 썼었다. 그런데 내가 입사할 시점에 그건 좀 그만 쓰고 세계 1등 제품을 만들어내자며 해외에서 가져온 아주 걸출한 다른 툴을 쓰기 시작했었는데, 나 빼고 아무도 안 쓰더라. 글로벌에서 이미 검증이 끝난 좋은 방법론이었는데도 말이다. 선배들에게 왜 안쓰냐고 물어보니 새로운걸 배우기 싫다고 한다. 동기들도 한두명을 빼곤 쓰지 않았는데 그들은 선배들도 안쓰는데 굳이 내가 왜쓰냐고 한다. 진짜 좋은 메뉴얼이었는데 나만 썼던 것이다. 이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치트키를 갖다 주고 쓰라고 협박을 해도 안 쓴다.   

 

투자 이야기를 해보자. 천안 아파트와 인천 아파트의 전세를 나는 거의 최고가에 우량 임차인에게 줬다. 아무도 전세를 못빼고 있을때 말이다. 심지어 분양가보다 수천만원씩 비싸게. 이것도 메뉴얼이 있었다. 블로그와 네이버 카페에 다 써있다. 조금만 검색하면 다 나온다. 우물쭈물 거리다가 뒤쳐지면 뒤질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선배들이 미리 닦아놓은 방법론을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고 내 특기를 조금 더 버무려 바로 실행에 들어갔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이렇게 모든 분야에 치트키와 메뉴얼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고 심지어 그 양도 참 많다.

 

상가에 임차를 놓는 것도, 내 상가에서 사업을 하는 것도, 수익형 부동산이라는 상가의 가치를 높여 비싸게 되파는 것도 이미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메뉴얼이 여기저기 존재한다.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 내가 고민하는 문제는 이미 과거 어느 시간 어느 공간에서 누군가가 똑같이 고민했고 이미 다 풀어놨다. 모든 문제의 95%는 이미 풀려 있다. 단지 5%만이 새로운 문제인데 그걸 푸는건 학자들이지 내가 아니다. 난 앞으로도 95%에 속해있을 거고 수많은 방법론, 메뉴얼, 치트키들을 이용해서 풀어낼 거다. 

 

남들보다 두배 세배로 경험을 쌓는 방법은 이것 뿐이다. 내 실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새로 시작하려는 대부분의 분야에서 실력이 없다는걸 인지하기) 훌륭한 선배들이 풀어놓은 답을 가져다 쓰는 것이다. 이렇게 살다보니 어쩌다 3주택 10상가는 달성했다. 여기서 더 꿈에 그리던 삶을 살기 위해선 지금까지 해온 것과는 또다른 방향의 길을 걸어야 하는데 뭐 그것도 당연히 가능하다. 검색하고 자문받고 돈내고 배우고 대화하고 의기투합하다 보면 보이지 않던 길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요즘 새로운 길을 또 걷기 시작했다. 바쁘지만 즐겁다. 우울해질 틈도 생기지 않는다. 가끔 모든게 무서워져 공황장애 스위치가 켜지려고 할 때가 있는데 그럴땐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걷고, 업무에 몰입하면 금방 풀린다. 이것도 정신과 의사 형누님들에게 배운 메뉴얼일 뿐이다. 

 

 

(다음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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