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 없는 진영논리, 흑백으로 나뉜 ‘조국’…열쇠는 ‘중도’

진보성향 언론인 '경향신문'에서 아주 좋은 글이 나왔습니다. 구구절절 옳은 글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진인 조은산님의 '시무 7조' 만큼이나 글에 깊이와 울림이 있습니다.

 

좌우진영을 떠나 누구나 읽어봐야 할 글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적폐'라고 부르는 '적폐 팬데믹 시대'. 대한민국은 너무나 분열되어 있습니다. 내가 그토록 싫어하고 욕하던 그 괴물들이 내가 아닐까요? 모두가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이 됐습니다. 

 

 

박성민의 정치 인사이드 - 20년 9월 5일 - 원문링크↓

 

[박성민의 정치 인사이드]‘논리’ 없는 진영논리, 흑백으로 나뉜 ‘조국’…열쇠는 ‘중도’

영남과 호남, 반일과 반공조국과 윤석열로 대표되는세대를 관통하는 정체성 싸움 ‘조국 내전’ 1년 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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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과 호남, 반일과 반공
조국과 윤석열로 대표되는
세대를 관통하는 정체성 싸움

‘조국 내전’ 1년 기념(?)으로 발간된 <조국 백서>(검찰 개혁과 촛불 시민)와 <조국 흑서>(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거대한 균열이 있다. 한국에서 ‘조국’은 사람을 가르는 선이다. 세상에는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그를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 그리고 그를 끔찍이 좋아하는 사람과 지독히 싫어하는 사람. 진중권과 유시민도 사람을 가르는 선이다.

 

나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직전인 2009년 8월, 중앙일보에 ‘양김의 화해’라는 칼럼을 기고했다. ‘… 김대중. 살아서 이미 역사가 된 인물. 상고를 나온 호남 출신으로 상상할 수 없는 의지와 집념으로 그토록 갈망하던 대통령과 노벨평화상을 모두 얻은 사람. 대한민국에는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그를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 그리고 그를 끔찍이 좋아하는 사람과 지독히 싫어하는 사람. 이 나라에서 그의 이름은 사람을 가르는 선이다 … 김영삼. 이름의 대중성(?)과 영향력에서 한 치의 밀림도 없는 김대중의 라이벌. 그도 이미 역사다. 서울대를 나온 영남 출신으로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어릴 때부터 꿈이었던 대통령이 된 사람.

 

대한민국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 이 두 사람을 김영삼·김대중 순으로 부르는 사람과 김대중·김영삼 순으로 부르는 사람, 그리고 호칭에서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 드러날까 봐 그냥 양김으로 부르는 사람. 그의 이름도 역시 사람을 가르는 선이다. 보수와 진보, 영남과 호남을 가르는 세로축과 가로축에 그 유명한 애칭, YS와 DJ가 있다.’

 

우리는 정치적 성향을 특정 인물에 투사한다. 2016년 총선 때도 정치 지형을 알아보는 가장 유용한 지표는 정당 지지도가 아니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선호도였다. 새누리당 지지도가 민주당보다 높은 지역도 역대 대통령 호감도 조사에서 김대중, 노무현을 선택한 사람이 이명박, 박근혜를 선택한 사람보다 많다면 그 지역은 민주당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한다. 대체로 인물에 대한 선호를 물었을 때 숨겨진 마음을 더 솔직하게 드러낸다. 예컨대 지금도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중에 누구를 더 신뢰하느냐,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진중권 전 교수 중에 누구를 더 신뢰하느냐, 묻는 것이 현실 판단에 더 많은 도움을 준다.

 

 

적폐와의 전쟁에 실패한 문 정권
더 강력한 ‘적폐 팬데믹’에 직면
탄핵 뒤 ‘2017 체제’ 기회 놓친 탓

<조국 백서>와 <조국 흑서>가 민주화 세대인 586의 균열을 보여준다면 8·15 광복절은 산업화 세대의 실존적 균열을 보여준다. ‘반일’·‘반공’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김원웅 광복회장과 전광훈 목사의 거친 메시지는 그들 세대가 어떤 시대를 헤쳐 왔는가를 온몸으로 웅변한다. 대한민국은 과대망상과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극심한 정신분열을 앓고 있다. 2020년 8월은 분열과 광기의 시대가 끝을 향해 마지막 불꽃을 피운 시간으로 기록될 것이다.

 

지지자들에게 욕먹을 용기가 있는 ‘지도자’는 보이지 않고 대중의 분노와 증오를 숙주 삼아 정치적 이익을 챙기려는 선동가는 차고 넘친다. 대한민국은 이들 가짜 민주주의자·포퓰리스트·어용 지식인·사이비 교주·사이비 언론이 키운 괴물인 ‘팬덤’의 폭력에 지배당하는 사회가 되었다. 진영 논리에 논리가 있을 리 없다. 거침없이 ‘토착왜구’와 ‘빨갱이’로 몰아붙이는 광기가 있을 뿐이다. 공격 대상도 무차별적이다. 내 편 아니면 모두 적이다.

 

2020년 9월 현재 대한민국은 3년 내내 적폐 청산을 외쳤으나 청산되기는커녕 감염력이 더 강한 ‘변종 적폐’가 재확산된 ‘적폐 팬데믹’ 상황이다. 온 나라가 ‘구(舊)적폐’와 ‘신(新)적폐’로 가득하다. 문재인 정권은 적폐와의 거리 두기에 완전히 실패했다. “우리는 적폐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는다”며 마스크도 없이 적폐 바이러스가 가득한 광장에서 대규모 밀접 집회를 가진 형국이다. 촛불 정권이라고 자동으로 적폐에 면역이 생기는 건 아니다.

 

(30년간 모든 정권의 몰락 과정을 지켜본) 나는 2017년 대선 이후 민주당 의원들을 만날 때마다 세 가지 우려를 전했다. 첫째, 적폐 청산을 외치지만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적폐는 문재인 정권에서도 대부분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둘째, 586세대의 권력욕이 부패로 이어질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구속 이후 집권한 정권이므로 부패 가능성에 엄격한 기준으로 대응해야 한다. 셋째, 국정 농단과 적폐 청산으로 많은 사람이 구속되었고, 지금도 수사받고 있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불구속 기소했다면 충분했다. 높아진 허들은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1년간 나라를 갈라놓은 검찰개혁
40% 고정 지지층의 허상에 갇혀
광장의 요구 받아내지 못하고 표류

지난 1년간 나라를 둘로 갈라놓은 검찰 개혁은 산으로 갔다. 이러려고 그토록 검찰 개혁을 외쳤단 말인가. 더불어민주당 김종민 최고위원이 <조국 흑서>에 대해 “흑서를 100권 낸다 해도 바뀌지 않는다. (국민) 40%는 ‘린치당한 거다’라고 본다”고 하자 <조국 흑서>의 저자인 진중권은 “그 말을 뒤집으면 (국민) 60%는 조국 린치가 아니라고 믿는다는 얘기다”라고 반박했다. 이 정도의 확증 편향이라면 서초동에서 검찰 개혁을 외친 모든 사람들이 <조국 흑서>를 읽고, 광화문에서 조국 구속을 외친 모든 사람들이 <조국 백서>를 읽는다 해도 몇이나 생각이 바뀔까.

 

김종민 의원이 무의식중에 내뱉은 40%는 문재인 정권 이너 서클의 잠재의식에 프로그램된 숫자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해도 밀어주고, 우리가 무슨 말을 해도 믿어주는 사람이 40%는 있다는 확신이다. (갤럽 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 직무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 39%, 부정 평가 53%로 두 번 40%가 붕괴한 적이 있지만 곧바로 반등했으므로 절대 무너지지 않는 콘크리트 지지층 40%가 있다고 믿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역사가 증명하듯 어느 정권도 그런 콘크리트 지지층은 없다.

 

나는 이 지면에서 문재인 정권이 두 가지 전략적 패착을 범했다고 여러 번 비판했다. 첫째, ‘2017 체제’를 만들지 못한 것이다. 탄핵 찬성 여론이 80%를 넘고, 국회의원 234명이 찬성했고, 헌법재판관 8명이 만장일치로 탄핵을 인용했다면 2017년 골든타임에 탄핵 연대를 ‘개혁 연대’로 발전시켜 개헌을 통한 ‘새로운 대한민국’ 시대를 열었어야 한다. ‘1987 체제’ 이후 30년 만에 ‘2017 체제’를 만들었다면 역사적으로 엄청난 업적으로 평가받았을 것이다. 두고두고 아쉬운 순간이었다.

 

둘째, 박근혜 정권에 대한 분노와 실망으로 2016년 총선 이후 ‘보수 동맹’으로부터 이탈한 중도 보수층을 ‘민주 동맹’의 우군으로 포섭하지 않은 것이다. 편입에 성공했다면 ‘주류 교체 전쟁’에서 확실한 승기를 잡았을 것이다. 왜 그러지 않았을까. 아마도 절박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이길 수 있다면 굳이 왜 그런 수고를 하겠는가. ‘플랜 A’가 잘 작동하는데 ‘플랜 B’를 꺼낼 필요는 없으니까.

 

문재인 정권이 ‘편 가르기’와 ‘국민 갈라치기’로 국민을 분열시킨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지지층만 믿고 가는 것은 두 가지 확신 때문인 듯하다. 어떤 경우에도 지지를 철회하지 않는 콘크리트 지지층 40%가 있다는 확신과, 아무리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이 싫어도 국정 농단의 주역이자 탄핵을 반성하지 않는 야당을 어떻게 찍겠냐는 확신이 있는 듯하다.

일리 있다. 정권의 위기가 오려면 ①정권 교체에 동의하는가? ②동의한다면 야당이 대안인가? 두 질문 모두 50%를 넘어야 하는데 아직은 둘 다 50%를 넘지 못한다. 8월 갤럽 조사에 따르면 ①번 질문에 대해 정권 유지 지지 41%, 정권 교체 지지 45%로 결과가 나왔다. 아직 정권에 대한 분노와 반감이 충분하지 않다.

 

문제는 ②번이다. 야당에 대한 비호감도가 너무 높다. 정치인이나 정당은 비호감도가 호감도의 두 배만 돼도 선거를 치를 수가 없다. 그런데 2020년 6월에 발표한 갤럽 조사에서 미래통합당 호감도 18%, 비호감도 69%로 거의 네 배였다. 같은 조사에서 민주당은 호감도 50%, 비호감도 38%였다. 2018년 8월 조사는 더 참담하다. 자유한국당 호감도 15%, 비호감도 76%로 비호감도가 다섯 배였다. 이 정도면 비호감이 아니라 혐오의 수준이다.

 

대중이 정당이나 정치인을 선택하는 세 가지 기준은 ①좋아해서 찍거나 ②필요해서 찍거나 ③상대가 싫어서 찍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③번이 가장 강력한 동력이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 40%와 민주당 지지율 35%가 무너지지 않는 것은 야당 덕이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등 여론조사 전문업체 4개사가 8월30일 발표한 ‘전국지표조사 심층리포트 1호 : 정당 지지도에 대한 다층적인 이해-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을 중심으로’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핵심 지지층은 30%로 견고한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미래통합당의 핵심 지지층은 14%로 절반 수준이었다. 그것을 근거로 보고서는 당분간 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의 지지도가 역전될 개연성은 높지 않다고 분석했다.

 

결론적으로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 40%, 민주당 지지율 30%를 떠받치는 콘크리트 지지층이 있다는 주장은 어느 정도 근거가 있지만, 뒤집어서 생각하면 대통령 지지율 40%, 민주당 지지율 30%가 무너지는 순간이 위기라는 주장도 일리 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 득표율이 41%였으니 대통령 지지율 40%와 당 지지율 30%가 무너지는 것은 핵심 지지층에 균열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솔직히 나는 콘크리트 지지층이 40%나 된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있다고 하더라도 생각보다 훨씬 적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최근 여론의 진폭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그건 ‘스윙보터’인 중도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 40%와 민주당 지지율 30% 붕괴의 열쇠는 핵심 지지층이 아니라 중도가 쥐고 있다. 정권의 몰락은 중도가 이탈하는 순간 시작된다.

 

핵심 지지층만 바라보고 ‘갈라치기’의 ‘플랜 A’로 계속 갈 것인지, 중도를 잡기 위해 ‘플랜 B’로 전략을 수정할 것인지 결단해야 할 순간이 오고 있다. 쉽지 않은 선택이다. ‘호남 대망론’의 응원을 업은 이낙연 대표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직 대통령의 인기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6개월짜리 대표를 하겠다고 나선 순간, 차기 대권을 스스로 쟁취해가겠다는 선언으로 봐야 한다. 차기 대권 지지율 1위가 당을 맡는 순간 신·구 권력의 긴장과 충돌은 불가피하다.

 

 

호남 대망론 업은 이낙연의 도전
대통령과의 관계가 성패 좌우

지금은 이낙연의 시간이다.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고 상황도 녹록지 않지만 대세를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은 것은 분명하다. 핵심은 문재인 대통령과의 관계다. 두 사람의 스타일과 ‘호남’과 ‘친문’이라는 현실적 힘이 서로 필요하기 때문에 당분간 긴장과 충돌은 자제할 것이다.

역사적 사례를 보면 현직 대통령과 큰 분열 없이 차별화에 성공한 경우는 모두 대선에서 승리했다. 전두환·노태우, 노태우·김영삼, 김대중·노무현, 이명박·박근혜의 관계가 그런 경우다. 물론 차별화 과정에서 현직 대통령의 탈당이 반복되긴 했지만 김영삼·이회창, 노무현·정동영과 같은 최악의 관계는 아니었다. 2012년 박근혜는 이명박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하지 않고도 차별화에 성공한 사례다. 차별화에 성공해야 정권재창출에 성공하는데 대체로 현직 대통령의 태도가 성공을 좌우한다. 이낙연 대표가 전략적 차별화를 시도할 때 문재인 대통령의 수용 여부가 성패를 결정할 것이다.

이재명 지사와의 경쟁은 생각보다는 여유가 있다. 이재명 지사가 추월한 조사도 있고, 바짝 추격한 조사도 있지만 (잘못된) 여론조사 방식이 만든 착시다. 발표되는 대부분의 조사는 여·야 후보 모두 쭉 늘어놓는 방식이기 때문에 보수층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대척점에 있는) 이재명 지사 지지가 높게 나온다. 여권과 야권을 나눠서 한다면 결과는 달라질 가능성이 크고, 민주당 지지층으로 한정한다면 격차는 어느 정도 유지될 것이다.

 

적폐 청산· 친일 프레임 시한 끝
최약체였던 ‘야당 복’도 다한 지금

문제는 핵심 지지층만 보고 온 국정 기조를 바꿔야 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는 현실이다. 적폐 청산과 친일 프레임의 유통기한은 2020년 8월에 끝났다. 검찰 개혁도 사실상 파산상태다. 코로나 대응 외에 내세울 업적도 없다. 부동산 정책 실패와 ‘아빠 찬스’ ‘엄마 찬스’의 불공정에 분노한 젊은층의 이탈도 가속화되고 있다.

 

‘야당 복’도 운이 다했다. 정체성의 위기, 지지기반의 위기, 리더십의 위기 등 삼중고에 시달리던 역사상 최약체 야당 대표 황교안 체제도 끝났고, 그 체제에서 전성기를 누리던 극우의 시대도 8월15일 광화문에서 종말을 맞았다. 이해찬 대표는 임기 끝까지 야당 복을 누렸지만 이낙연 대표는 만만치 않은 김종인 체제를 상대해야 한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취임 100일을 맞아 “변화와 혁신의 DNA를 당에 심겠다 … 약자와 동행하는 정당, 국민통합에 앞장서는 정당, 누구나 함께하는 정당으로 체질을 개선하겠다”고 선언했다. 정강·정책을 통해 중도와 청년층 공략이 전략적 목표임을 분명히 했다. 민주당의 안방인 호남도 포기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중도와 청년층의 지지를 잃지 않으려면 국정 기조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대표가 익숙한 것과 이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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