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여 생활자의 투자 이야기(1) 취업,퇴사,+그것

나랑 죽이 잘 맞던 사수는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자주 했었다.

 

'스댕아, 우리 10년 후 모습은 어떨까?

우린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 10년째가 딱 올해다.

 

 

직장 생활에 대해 자조섞인 농담을 하던 시절이 입사 4년차였다.

대기업 직장인으로서의 삶에 의문이 들기 시작한 시기..

 

아래는 2012년의 내가 하던 생각들이다.

 

'대학 때보다 내 처지가 더 나아진 거라고 할수 있는가?'

'이대로 살면 부자가 될수 있는가?'

'난 왜 아직도 거렁뱅이 인가?'

 

매달 급여를 받고 기숙사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출근-퇴근-게임-잠 / 출근-퇴근-게임-잠의 무한 싸이클.  그래도 통장에 차곡차곡 돈을 쌓고는 있었는데, 취업 전에 생각하던 대기업 직장인의 멋진 모습과도 부자 삶과도 거리가 멀었다. 게다가 미래에도 그 처지가 별반 달라지지 않을 것 같은 불안한 생각들이 엄습해왔다.

 

내 미래의 모습을 유추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앞, 뒤, 옆자리에 내 미래 그 자체들이 많이 계셨으니까. 선배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10년 후의 모습인 조차장님과 20년 후의 모습 박상무님을 말이다.

 

조차장님은 일을 정말 잘하는 사람이었다. 명문대 박사출신으로 과장으로 입사 후 6년을 더 다닌 분이었고, 그런 고스펙의 스마트한 사람이 내 상사라니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대단해 보이는 사람마저 생활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

 

연초에 PS(보너스)가 Max로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차장님은 표정이 안좋았다. 왜그런지 물어보니 전세금을 올려달라는 집주인 때문에 고민이라고. 보너스 받은걸 전부 전세금에 태워야 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그러니 기쁠 수가 없다고.. 

 

차장님은 자본가들과 집주인들에 대한 비판을 하곤 하셨다. 지인을 통해 근황을 알아보니 아직도 비슷한 스탠스라고 하신다. 여즉 내집 마련을 하지 않으신 것 같다.

 

그래도 더 성공한 20년 후 모습은 극적으로 달라지지 않을까 싶어 그당시 모든 직린이들의 롤모델인 박상무님도 관찰했다. 누구보다 일찍 회사에 오시고 누구보다 늦게 집에 가시는 분. (서실 이 부분에서 이미 삔또가 나감)

 

자랑스러운 삼성인상을 받으시고 아주 어린 나이에 임원 타이틀을 획득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막연히 '부자일 것이다. 너무 잘 살고 있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지만 그것마저 오판이었다. 주말에도 회사에 매번 나오시길래 술자리에서 은근슬쩍 이유를 여쭤봤더니,

 

'내가 집에 있으면 가족들이 부담스러워 해' 라고 하신다. 차장님의 전세금 케이스보다 더 끔찍했다. 집도 있고 회사에서 존경받지만 집에서 환영을 받지 못한다. 회사에 나오지 않는 날은 보통 도시락을 싸서 도서관에 간다고 하신다..하.. 주말에 혼자 책을 보며 잘리고 난 후의 미래를 위해서 준비를 하신다고. 내 미래의 모습이 또 생고생을 하며 그 다음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미래의 미래..

숨이 턱턱 막혀온다.

내가 꿈꾸던 삶은 그런게 아니었다.

 

특이한 케이스라고 생각할 모르겠지만 다른 선배들도 처지가 별반 다를바 없었다. 우리나라 제 1의 회사인데 돈과 시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어보였다. 그 무엇보다 문제인 건 연봉도 그렇지만 그들의 미래는 더 불분명해 보였다는 것이다. 대부분이 특기 없이 관리직/사무직 등으로 정년을 맞이하다보니 퇴직 후 갈곳이 없어보이더라. 중소기업 직원들보다 오히려 더 기회가 없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삼성의 별이 되겠다는 다짐은 그당시 모두 사라졌었다. 퇴사를 생각하기 시작하여 실제로 이행하기 까지는 시간이 4년 정도가 더 걸렸다.

 

결국 입사 8년차에 파란 명함을 버리고 나와 이전 회사와는 비교조차 불가능한 작은 사무실에 멤버로 합류했다. 남들은 절대 이해 못할 선택이었다. 매출이 1만분의 1도 안되는 작은 사무실. 다들 말리는 선택이었으나 나는 먹고 살만한 자신이 있었다. 회사를 다니며 모은 돈으로 해놓은게 있었거든.

 

용기를 낼수 있도록 가장 큰 도움을 준건 내 실력도 아니고 합류할 회사의 매출도 새롭게 만날 동료들도 아닌 입사 6년 차에 마련해놓은 상가의 임대료였다. 그 상가에선 이자를 제하고 매달 130만원 정도가 떨어졌었는데, 그 정도 돈만 백업이 되면 내가 뭘하든 가족들을 먹여살릴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그 상가는 아직까지 보유 중이다.)

 

길어져서 2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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