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PS4 구매대란과 오프라인 구매 후기(後期)

2019년 1월, SONY에서 또 일을 냈다. 그리고 우리 와이프도 일을 냈다.

 

1월 24일부터 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 제품군을 최대 15만원까지 할인해주는 특가 할인 판매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PS4 하드웨어가 이미 두대나 있는 나도 혹할만한 할인이다. 난 이미 구형 플스4와 PS4 5억대 판매기념 전세계 5만대 한정판 PS4가 있다. 구형은 플레이용으로 열심히 돌아가는 중이고 한정판은 박스채 관상용으로 잘 보관 중이다. 그런데 이번 특가할인은 Slim과 Pro다. 나한테 없는 모델이다. 매력적이다. 한놈은 얇고 이쁘고 한놈은 성능이 좋다. 

 

소유하고 있지 않은 모델이지만 동일한 기능을 구현하기 위한 기기를 또 들이는건 사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구매하지 않으려 했다. 마침 전날인 1월23일에 회사식구, 파트너 변리사형들과 함께 술도 많이 마셔서 24일의 이벤트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느즈막히 일어나 포털들을 보니 PS4가 오랫만에 실시간 검색어에 떠있었고 온라인에서는 0시부터 판매가 시작되어 진즉 품절되었다고 한다. 구매할 기회조차 없었기 때문에 아쉽지도 않았다.

 

24일 아침 딸래미와 와이프를 먼저 보내고 나는 느즈막히 출근을 하였다. 직장인 판교테크노밸리까지 가는 방법은 버스와 지하철 두 가지이다. 차가 막히지 않는 10시쯤 집에서 나왔기 때문에 버스를 타는게 당연하였으나 이상하게 지하철을 타고 싶었다. 판교 현대백화점에 플레이스테이션 파트너샵이 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 곳에 그 시간에 간다면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어느순간 이성이 마비되었다. 발걸음이 저절로 지하철 분당선 기흥역으로 향했다. 정신줄을 놓을만 했다. 마침 얼마전에 사놓은 주식이 크게 올라 이익실현을 한 데다가 며칠 후 보너스도 두둑하게 나온다. 정신없이 전철역으로 향하던 중 갑자기 어떤 차가 왜인지 경적을 울린다. 아 나보고 정신을 차리라고 하는건가? 이성을 추스른 후 마음을 접고 버스정거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보통 버스에서는 음악을 들으며 눈을 감고 가지만 이날은 뽐뿌와 루리웹을 번갈아가며 볼 수 밖에 없었다. 모든 온라인 구매처에서 품절이라고 하니 괜히 안도한다. 내가 굼뜨게 행동해서 못산게 아니고 어쩔 수 없이 못산거다. 판교 현백으로 가지 않고 버스를 탄게 잘한 것이라고 끊임없이 위로하였다. 

 

 

 

[ 판교 겜덕(GAMEDUCK) ]

 

 

유스페이스 앞 삼평교. 버스에서 내린다. 버스안에서 동생에게 문자를 했는데 동생이 그런다. PS4 구매 대란이 났다고. 전국의 주요 PS4 판매처 앞에 줄이 대단하단다. 링크 하나를 보내왔는데 정말 대단하더라. 사람들이 몇시부터 줄을 섰길래 아침 10시의 줄이 그정도였을까? 그때부터 내 심리가 바뀌기 시작한다. 길게 늘어선 줄들을 보니 뭔가 내가 죄를 짓고 있는 느낌이다.

 

 

내가 해야 지금 할 일은 출근이 아니라 저기에 줄을 서있어야 하는 건데! 회사로 직진하던 발걸음을 약간 틀어 판교테크노밸리의 유일한 게임샾 '겜덕'으로 향한다. 다행이다 문이 닫혔구나. 사장님께 문자를 해보니 소매점에는 들어오지도 않는단다. 정말 다행이다. 어쩔 수 없는 외력에 의한 일이라며 또 한번 안도한다. 미련을 버리고 사무실로 올라간다. 그리고는 와이프 때문에 절대 게임기를 구매할 수 없는 사무실의 동료에게 괜히 묻는다.

 

"너는 PS4 안사니? 오늘부터 15만원 할인이래."  

 

사지 않을 걸 알았지만 괜히 물어본 내 심리가 지금 생각하니 웃기다. 나는 이미 두 대나 갖고 있어서 구매를 하지 않는것이 합리적이지만, 절대 사지 못할 걸 아는 이 친구가 폭탄세일로 인하여 구매를 한다고 하면 친구를 핑계삼아 나도 사려는 의도였기 때문이다. 

 

'와 이친구도 사는데 내가 안사면 어디가서 게이머라고 할 수도 없지'

이런 느낌말이다.

 

하지만 역시나 이 친구는 못산다고 하였고, 나도 마음을 접었다. 일을 하려고 노트북을 켰다. 그런데 하필 첫 화면이 루리웹이었다. 전날 웹서핑을 하다가 루리웹에서 껐나보다. 이성이 한 번 더 끊어진다. 두번째 끊어진 이성은 절대 다시 잡을 수 없다. 업무 때문에 전화로 어딘가에 설명을 하고 있는 대표형과 안팀장에게 짤막한 한마디를 던지고 사무실을 나왔다.

 

"나 현백좀 다녀올게. PS4 사러간다"

 

그리고 열심히 현대백화점으로 달려간다. 탄천을 건너가는 중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른다. 오전 11시. 이시간에 나를 판교 한복판에서 이렇게 편하게 부를 사람은 한명밖에 없다. 나보다 어제 술을 더마시고 뻗어있을 줄 알았던 내 오랜 동료. 현수형. 어디를 가냐고 한다. '형 오늘부터 PS4가 15만원이나 할인이래', '어? 너 있잖아?', '어 근데 이건 성능이 좋고 조용해.' 내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거리는 현수형. 역시 내가 인정한 남자. 나의 심리를 이미 아는군. 이 형이 따라온다. 좀 같이 걷다가 회사로 들어간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걷느라 걸음이 느리다. 빨리가야되는데.

 

"형, 같이 가자"

 

요즘 회사가 쉬는 시즌이라 이 형도 별로 할 일이 없다. 흔쾌히 같이 간다. 전날 마신 술에 절어 얼굴이 허옇게 뜬 두 30대 후반 남자가 길을 물어물어 현대백화점 PS4 판매점인 5층에 도달했다. 음? 뭔가 이상하다. 이 시간 이 요일에 남성복 매장인데 줄이 있다? 판교 현대백화점은 내가 가본 백화점 중 가장 넓은 면적이었다. 모든 층이 다 넓다. 역시나 짐작대로 그 줄의 정체는 PS4를 사기 위한 구매 대기열이었는데, 대기열이 그 넓은 판교 현백의 한 층을 한바퀴 감아 돌았다. 대충 세어보니 350명 정도더라. 현수형을 줄의 끝자락에 대기시키고 매장 앞에 가서 몇대가 들어왔는지 물어본다. 다음날 입고분까지 합쳐서 250대 라며 대기표를 나눠주더라. 노력을 했는데도 안되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현수형과 함께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와이프에게 전화를 했다.

 

 

 

[ 판교 현대백화점의 1월 24일 PS4 구매 대기열, 굉장했다. 이렇게 많은 남자는 처음 봤다는 점원들 ]

 

 

"나 PS4 새로나온게 너무 할인을 해서 사려고 했는데 못샀어. 아쉽다"

"그래? 어디서 파는데?"

 

또사? 라고 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어디서 파냐고 물어본다. 그동안 내가 잘살았나보다. 그렇게 물어봐주는 와이프한테도 참 고맙기도 했고.  

 

"어? 그거 소니 파트너샵들인데 모든 매장이 다 줄이 길어서 못사. 그런데 롯데마트에서도 팔려나? 팔 것 같기도 하고.."

"그래? 그럼 내가 있다 가서 봐줄까? 오후에 문화센터(롯데마트와 함께 있는) 가니까"

"그래 뭐 없겠지만 함 가봐"

 

 

당연히 없겠거니라고 생각했고 마음을 비웠다. 처리할 업무가 많아 열심히 일을 했다. 4시쯤 되자 와이프한테 이게 맞냐며 카톡이 온다. 헉. 사진을보니 게다가 7218B이다. 당연히 49만8천원짜리 할인 안된 제품일 것이라 생각하고 점원한테 가격을 찍어보라고 했다. 이번엔 내가 전화를 했다. 

 

"얼마래?"

"34만8천원 이래. 이거 한대 남았대."

"헉. 당장 사줘. 통장에 보내줄게"

"알았어. 무거우니까 끊어~"

 

24일의 수많은 번뇌와 수고들, 이성을 탈출의 반복, 판교 현대백화점에서의 고생들이 허무하게 와이프의 엄청난 퍼포먼스로 인하여 좋은 결과로 마무리가 되었다. 그냥 롯데마트에 놀러간 갓-와이프님께서 1초도 줄을 서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남은걸 집어올 줄이야. 여기저기 올라오는 구매 도전기에는 힘들게 성공한 사람과 힘을 들였으나 못산 수많은 사람들이 한탄을 하고 있는데 말이다. 

 

 

 

[ 영롱하게 빛나는 로고의 나의 다섯번째 플스, PS4 Pro 7218B ]

 

 

사실 작년에 기흥으로 이사오면서 TV도 LG OLED 4K 65인치로 구매했다. 그 TV도 와이프가 작은 사업을 하여 번 돈으로 사준거였다. 그 사실을 자꾸 잊어먹는다. 잘 기억해야지. 그동안 좋은 TV에 구형 PS4가 물려있어서 내심 안타까웠다. 호라이즌 언틸 던 같은 게임이 4K를 지원하는데 구형 PS4에서는 4K 게임을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뭐 어쨌든, PS4 패키지 박스가 거실에 덩그러니 놓여 있을 걸 기대하며 부푼 마음으로 퇴근을 했다. 그런데 음? 거실에 게임기 박스가 없다. 와이프에게 물어보니 무거워서 트렁크에서 못빼왔다고 한다. 그렇게 말하는 와이프가 정말 이뻐보였다. 트렁크에 잠들었있을 게임기는 다음날 꺼내오기로 했다. 새 기기의 포장을 뜯을 기대감을 하루쯤 더 가지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하며 즐겁게 잠을 청했다.

 

그리고 또 결심했다. 고생한(?) 우리 와이프에게 그동안 못사줬던 노비스 패딩을 사주기로. 

 

2019/01/27 - [Culture] - PS4 스파이더맨 플래티넘 달성과 그 소회(所懷)

PS4 스파이더맨 플래티넘 달성과 그 소회(所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