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D의 CEO 리사 수 박사의 일대기

최근 상한가를 치고 있는 CPU제조기업 AMD(Advanced Micro Devices).

 

불과 몇년전까지는 인텔(Intel)에 많이 밀리던 기업이었다는 사실을 아는가? 2011년부터 2017년3분기까지 적자를 내던 기업이 AMD였다. 하지만 2014년 리사 수의 AMD CEO 취임 3년만인 2018년 1월, 2017년 4분기 실적을 발표하며 AMD는 2011년 이후 처음으로 흑자 전환에 성공했음을 알렸다.

 

현재 진행형인 전설적 인물! 팜프파탈의 표본! 세계 최고의 걸크러쉬! 그저 빛같은 존재 '리사 수(Lisa Tzwu-Fang Su, 姿豐)'를 알아보자. 나는 이미 본받고 있으니, 우리 딸도 리사 수 누님을 본받아 훌륭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AMD CEO 리사 수의 경력 도표
빛같은 존재, 리사 수 (출처: 나무위키)

 

리사 수는 대만 출신의 미국 기업인이다. 사망 직전까지 갔던 AMD를 살려낸 구세주이며, 인텔의 독점 하에 경직되어 가던 컴퓨터 CPU 시장의 판도를 경쟁체제로 되돌려놓은 사람이다.

 

이민자, 황인, 여성이라는 편견을 모두 극복하고 오로지 실력만으로 실리콘밸리의 리더가 된 리사 수의 일대기를 알아보자. 

 

미국의 언론은 리사 수를 CEO(최고경영자)라고 부르지 않고 박사(Ph.D)라고 부른다. 이것은 AMD 내부에서도 동일하다. 그녀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박사'호칭을 유지한다고 한다. 도대체 왜!? 

 

우선, 리사 수는 명예 박사가 아니다. 대학에서 반도체 공학을 전공한 후 수많은 걸출한 연구 논문 발표를 통해 반도체 산업 발전에 직접적인 기여를 했다. 2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간 리사 수는 1986년 메사추세츠 공과대학(MIT)에 입학했다. 컴퓨터 공학과 전자 공학 사이에서 고민하던 그녀는 당시로서는 금녀의 구역이나 다름 없던 전자 공학(하드웨어)을 전공으로 선택하였다. 

 

리사 수는 MIT 박사 학위 논문에서 ‘실리콘 온 인슐레이터(Silicon on Insulator, 웨이퍼 기판 표면과 하층 사이에 얇은 절연막층을 추가해 반도체의 성능을 향상시키는 기법)’를 효율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방법을 제안했고, 이 아이디어가 IBM과 AMD에게 받아들여져 AMD의 애슬론 프로세서가 인텔 펜티엄 프로세서를 성능면에서 능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었다. 

 

이론보다는 실용성을 추구한 리사 수는 박사 후 과정을 밟지 않고 곧장 TI(텍사스 인스트루먼트)에서 잠시 머물다가 IBM의 반도체 연구 개발 부서에 이사로 합류한다. IBM에 합류 하자마자 반도체 금속 배선의 표준이었던 알루미늄 배선을 구리 배선으로 교체하는 방식을 고안, 반도체의 데이터 처리 속도를 20% 가량 향상시켰다. 그 당시(1998년) 선보인 구리 배선재료는 현재까지도 업계 표준으로 활용 중이다.

 

이후 리사 수는 IBM의 R&D 부서에 12년간 재직하면서 40개 이상의 반도체 관련 논문을 발표하며 소자 물리학 분야에서 입지를 쌓았다.  리사 수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MIT 테크놀로지 리뷰는 2001년 그녀를 "35세 이하 최우수 혁신가'로 지명하기도 했다.

 

리사 수가 엔지니어에서 경영자로 올라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있는데, IBM 호환 PC와 메인프레임의 기초 설계를 맡은 전설적인 엔지니어 니콜라스 도노프리오(Nicholas Donofrio)이다. 도노프리오는 리사 수를 IBM 최고경영자의 기술 자문으로 추천하여 반도체 기업의 경영자로서의 경력을 쌓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리사 수의 IBM 재직 시절 SCE(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와 인연을 맺게 되면서 '셀(CELL)'이라고 이름 붙여진 플레이 스테이션 3용 CPU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하였고, 이를 통해 '제논'이라는 CPU 또한 만들어 Xbox 360에도 탑재하였다. 이렇게 리사 수가 만들어낸 CPU들이 비디오 게임 시장을 장악하게 되었고, 이 경험은 훗날의 AMD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IBM에서 반도체 제작 과정 전반에 대한 관리 경험을 쌓은 리사 수는 2007년 프리스케일의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이직하여 임베디드와 통신을 위한 반도체 개발을 지휘, 2011년 프리스케일은 성공적인 기업공개(IPO)를 마치게 된다.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던 리사 수, IBM 시절 멘토인 도노프리오로 부터 한가지 제안을 받게 된다.  IBM을 떠나 AMD의 이사회의 일원으로 일하고 있던 도노프리오는 기업 존폐의 위기에 놓인 AMD를 구할 수 있는 인물로 리사 수를 지목, 그녀는 이를 승낙하고 글로벌 비즈니스 매니저(부사장)로 풍전등화의 AMD에 합류했다.

 

리사 수 재임 전 AMD의 야심작 '불도저' 프로젝트와 APU 제품군(CPU+GPU)이 모두 치명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시장에 출시하면서 제대로 망하면서, 인텔에게 점유율을 거의 모두 뺏기고 만다.

 

2007년 기준 77.1%(인텔) 대 22.7%(AMD)였던 점유율이 2011년 기준 AMD 8.7%로 폭락하며 주가마저 2달러 대로 폭락한 것. 

 

또한, 한때 3:1 정도의 비율로 인텔 제온과 시장을 나눠먹던 AMD의 서버 및 슈퍼컴퓨터용 CPU ‘옵테론’이 불도저 아키텍처의 실패로 명맥이 끊겼고, 탄력을 얻은 인텔은 서버 및 슈퍼컴퓨터 CPU 시장에서 99%의 점유율을 확보하게 되었다.

시장평가기관은 AMD가 곧 망할 것이라고 예측했고, CPU와 GPU 설계를 위한 핵심 엔지니어들이 삼성전자, 엔비디아 등 다른 회사로 줄줄이 이직했다.

 

2012년 AMD의 부사장으로 취임한 리사 수는 적자에 시달리는 회사를 구해내기 위해 새로운 비즈니스 전략을 고민한다. 이때 리사 수가 문을 두드린 곳이 비디오 게임기 시장이다. 과거 IBM에서 리사 수가 주도했던 PS3, XBOX 360용 CPU 개발이 생각났을 것이다.(경험이 이렇게나 중요하다)

 

그녀는 MS와 소니가 개발 중인 차세대 비디오게임기에 AMD의 CPU와 GPU를 공급하겠다고 제안하는데, 여기에 과거 실패했던 APU(CPU+GPU 통합 칩셋) 카드를 꺼내든다. 제안 당시까지만 해도 APU는 어정쩡한 성능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비디오 게임기용으론 그 정도 성능이면 충분하다는 판단이었기 때문이며 게다가 ‘원칩화(하나의 칩셋으로 통합)’되어 있으니 비디오 게임기를 작게 만드는데 최적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비디오 게임기 제조사에겐 매력적인 제안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MS와 소니는 자사의 차세대 비디오 게임기인 엑스박스 원과 플레이 스테이션 4에 AMD의 APU를 채택했고, 두 비디오 게임기는 출시되자마자 시장에서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이는 AMD가 흑자전환을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리사 수의 시장 다각화 전략 덕분에 전체 매출의 90% 이상을 PC 시장에 기대던 AMD는 2014년 매출의 약 40%를 비 PC 시장에서 확보하는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었고, 그간의 업적에 의해 2014년 10월 AMD의 최고 경영자로 임명되었다. 실리콘밸리 반도체 기업 최초의 여성 최고경영자가 탄생한 것.

 

이제 AMD는 한 숨 돌릴 수 있게 되었지만 시장은 여전히 의심의 시선으로 그녀와 AMD를 지켜봤다. 하지만 리사 수는 태연했다. 리사 수는 직원들이 지켜야 할 딱 한가지 덕목을 이야기한다.

"훌륭한 제품을 만들어라."

회사의 사정이 어렵다고 제품의 품질까지 타협할 수 없다는 리사 수의 철학이 발언에 녹아있다. 이런 주문을 위해 AMD 직원들이 훌륭한 제품 개발에 집중할 수 있도록 R&D 라인업을 최대한 간소화했다.

 

PC, 모바일, 서버, 슈퍼컴퓨터, 인공지능 등 모든 컴퓨팅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공통 CPU 아키텍처를 만드는데 모든 R&D 비용을 투입하고, 기타 R&D 계획은 모두 정리했다. 이러한 경영전략 덕분에 AMD의 모든 R&D 부서는 '젠(Zen)'이라는 아키텍처를 개발하는데 총력을 기울일 수 있었다.

 

 

젠(Zen)의 양산 직전, 아키텍처 내부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제품 출시의 연기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나 리사 수는 출시일에 대한 소비자와의 약속을 어길 수는 없었다. 리사 수는 4명의 AMD 최고 엔지니어를 불러 모아 '실패라는 선택지는 없다(아폴로13 T/F 구성)'라며 본인도 AMD 오스틴 연구실에 상주하였다. 결국 AMD의 엔지니어들은 제품 양산에 앞서 젠(Zen) 아키텍처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내는데 성공한다.

 

이러한 리사 수와 AMD 임직원들의 노력이 결실을 거둬 2017년 2월, 젠 아키텍처 기반의 CPU '라이젠(RYZEN)'이 시장에 공개되었다. 라이젠은 대부분의 성능이 인텔 코어 i 프로세서를 능가했다. 그러면서도 가격은 동급 인텔 CPU의 절반 수준.

 

당연히 소비자와 시장은 라이젠이라는 놀라운 CPU와 AMD에 열광했다. 소비자들은 인텔의 CPU 대신 라이젠을 선택하기 시작했고, 라이젠이 출시 이전 18.1%에 불과했던 AMD의 PC 시장 점유율은 2017년 2분기에 31%로 치솟았다. 라이젠의 성공으로 투자자들도 AMD를 다시 긍정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1주 당 2달러에 머물던 주가는 12달러로 6배 이상 상승했으며 리사 수는 포천 선정 2017 세계 최고의 리더(WORLD'S GREATEST LEADERS) 50인 가운데 1인으로 선정됐다.

 

라이젠의 성공으로 AMD를 다시 궤도에 올린 리사 수는 이제 AMD의 미래를 책임질 새로운 먹거리인 AI(인공지능)용 CPU와 GPU 두 분야에서 가격 경쟁력 바탕의 공격적인 전략을 펼친다. 젠 아키텍처를 활용한 서버(클라우드) 및 슈퍼컴퓨터용 프로세서 '에픽(EPYC)'을 시장에 출시할 계획이다.

 

AMD의 에픽을 활용하면 Intel의 제온 대비 절반 가격에 동등한 성능의 인공지능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이는 2017년 하반기 바이두, 마이크로소프트 등 3개의 주요 클라우드 공급자에 채택되었으며 델 EMC, HP 엔터프라이즈, 레노버 등 대기업 및 중견 기업 고객의 채택을 유도하고 있다.

 

2018년, 리사 수의 지휘 아래 AMD는 블룸버그의 50대 기업에 명단을 올리게 되었다. 2015년 초반 21억 달러에서 2018년 12월 기준 205억 달러로 3년 만에 시가총액이 약 880%나 증가했다. 2019년 1월 2일 CES 2019에선 기조 연설을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2019년 5월 27일, 컴퓨텍스 타이베이 2019에서 3세대 zen 2를 발표해 기어이 CPU 시장을 뒤엎어버리는데 성공했다. 라이벌 인텔이 아직도 14nm에서 멈춰있는 상황인데 무려 7nm 공정을 사용했고 성능과 가격 모두 인텔을 앞질러버렸다.

 

2019년 6월 리사 수는 미국의 경제 잡지 Barrons 에서 2019년 최고의 CEO로 선정되었다. 리사수가 최고의 CEO라는 것은 현재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2019년 리사 수와의 인터뷰에서, 아시아계 미국인 여성이라는 배경이 실력 발휘에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리사 수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별로 없다"고 답했다. "운이 좋게도 늘 좋은 기회, 좋은 사람을 만나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면서 "소수계라는 생각에 갇히면 본인만 위축될 뿐"이라고 덧붙였다.

 

"CEO면 CEO고, 엔지니어면 엔지니어지, 그게 남자이건 여자이건 뭐가 중요한가"라는 얘기였다. 기자의 "실리콘밸리 반도체 기업 최초의 여성 CEO이자 대만계 이민자다. 글로벌 기업을 경영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라는 질문에 리사 수는 “스스로 ‘최초 여성 CEO’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새로운 CEO’일 뿐이다. 소수계라는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 편이다. 편견과 맞서 싸워야 한다는 인식도 거의 없다.

 

그저 혁신과 기업 경영을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라고 답변했다

 

당신 정도의 이력이면 AMD 말고도 얼마든지 더 좋은 데 갈 수 있었을 텐데? 라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그녀의 답변은 더욱더 멋지다.  

“도전하고 싶었다. 이미 잘나가고 있는 기업으로 가면 새로운 걸 시도하거나 바꿀 여지가 잘 주어지지 않는다. 그런 회사는 ‘쉬운 선택지’이긴 하지만 매력이 없다. 그런 데선 내 가치를 입증할 수 없다. 뭔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고 이겨내야 사람들이 날 주목하고 알아주지 않겠는가. 체질적으로 그런 상황을 좋아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적절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AMD에 와 일군 성과에 보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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