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신사업 발굴 프로젝트

걱정되는 신사업 발굴 프로젝트 하나가 있었다. 과제의 결론은 이미 도출 완료된 상태였는데, 사업의 결과가 기업측의 실무 담당자에게 그다지 만족감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자료를 더 보완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시간과 인력을 더 투입한다고 해서 결론이 바뀔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승부를 걸어보기로 했다. 일반적인 시각으로 보면 무리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최종 보고 일정을 앞당겨 잡았다. 

 

 

최종발표 전날 해당 중소기업의 로얄패밀리에게 전화가 왔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기에 '내일 발표에 참석할 모양인가?'라는 생각이 들어 반갑게 전화를 받았는데, 나를 질책하는 전화였다. 신사업 발굴 프로젝트의 결과물들이 그 동안 본인들이 생각했던 내용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 이런 종류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면 으레 나올 수 있는 반응이다. 그간의 경험상 발표를 진행하면 모두 풀릴 마찰이지만 우리도 보통 사람들이기에 최종보고 직전까지 내심 스트레스를 받을 수 밖에 없다.

 

 

로얄패밀리에게 전화가 온 것은 특기사항이기에 회사 카톡방에 이 사실들을 알렸다. 그리고 최종보고에 주로 할 이야기는 신사업 아이템과 더불어 기업의 실무자들이 보이는 소극적 자세와 기업 오너 가족들이 가진 무사안일주의, 시장과 기술의 상황을 입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 등을 강하게 지적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회사에서 걱정을 한다. '일정을 뒤로 미루는 것이 어떨지?', '오늘 밤에라도 자료 보완을 더 해라' 등의 의견이 나왔지만 모두 거절했다. 

 

 

나는 기업의 담당자와 로얄패밀리 그 둘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료를 준비한 것이 아니라 그 기업의 미래 매출을 확보하기 위해 자료를 준비했다. 여기서 일정을 뒤로 미루고 자료를 보완하면 그동안 우리가 준비했던 내용들의 가치를 떨어뜨리게 되는 꼴이라고 판단했다. 사실 그때까지 만들어진 자료로도 전 세계의 사업가 그 누구라도 설득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잖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발표를 망치는 꿈을 꿀 정도였으니까. 찝찝한 꿈 덕분에 오후의 발표 준비를 좀 더 할 수 있었다. 발표는 오후 4시였고 오전은 실습 위주의 강의 건이 있어 사람들이 실습을 하는 동안 나는 내 주장에 신뢰를 더 보태기 위한 사전 멘트를 구상하였다. 최종 보고 직전, 회사의 대표 형으로부터 짧은 문자가 왔다.

 

 

"모든 성격에는 힘이 있다. 다만 화를 내지 않는다면." 

 

 

심금을 울리는 한마디였다. 최종보고 직전 사무실 식구들의 조언을 많이 수용하였다. 기업의 임직원들을 대차게 까고 오려 했던 작전을 수정하였다. 우리와 일부 비슷한 의견을 낸 기업의 신사업 T/F를 수십명의 임직원들 앞에서 한것 띄워주었고, 그 기업이 앞으로 직면할 정말 중대한 위기에 대해 강한 어조로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우리가 도출한 신사업 아이템에 대한 매력적인 미래를 설명하였다.

 

 

80장이 넘었던 그날의 자료를 기승전결에 따라 새롭게 배치하여 내용 수정은 없지만 다른 자료로 느낄 수 있도록 발표 순서를 조정하였다. 중요도가 떨어지는 부분은 과감하게 스킵하였으며 최종 신사업 아이템 두개 중 하나는 버리고 더 잘될 놈 하나에만 집중하여 발표하였다. 

 

 

결과적으로 큰 박수와 감사인사를 받으며 프로젝트가 종결되었다.

 

 

최종 보고 전날 있었던 모든 이벤트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아마 로얄패밀리의 질책이 없었다면 안일한 준비를 해갔을 것이고 몇 단계 수준이 떨어지는 프리젠테이션을 했을 것이다. 적절한 스트레스와 얼마 남지 않았던 시간이 내게 고도의 집중력을 제공했다고 생각한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느낀 것들이 많다. 감내할 수 있을 정도의 스트레스는 일의 완성도를 크게 높여 준다는 것과 내 준비가 철저했다면 과거의 나를 믿어보고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가보자라는 것, 그리고 내 말이 아무리 옳다고 생각해도 주변의 조언을 들어보는 것이 상황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번에 새롭게 쌓인 경험과 통찰이 나중에 성장한 우리 딸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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